"예술 연기의 정점"…악착 같았던 스크린 속 줄리앤 무어와 내털리 포트먼

입력 2024-03-06 17:43   수정 2024-03-07 00:44


두 배우의 ‘악착같은’ 연기를 한 스크린에서 보는 것만큼 짜릿한 것이 없다. 잉마르 베리만의 ‘페르소나’(1966)에서 리브 울먼과 비비 앤더슨이 그랬고, 마이클 만의 ‘히트’(1996) 속 로버트 드니로와 알 파치노가 그랬다. 마치 거울처럼 혹은 지킬과 하이드의 양면을 가진 도플갱어처럼 서로의 에너지를 주고받는 두 배우의 모습을 (관객으로서) 보고 있으면 경이로움을 넘어 묘한 질투심과 소외감까지 느껴진다. 토드 헤인스의 ‘메이 디셈버’가 그런 작품이다.

두 메인 캐릭터 ‘그레이시’와 ‘엘리자베스’를 연기하는 줄리앤 무어와 내털리 포트먼은 단연코 이 영화의 ‘센터피스(centerpiece)’다. 두 여배우의 아름다움을 떠나 이들이 가진 저력과 영화 후반부로 가면서 단계적으로 드러나는 정교한 변신은 가히 연기 예술의 본체를 예시하는 스펙터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는 뉴욕타임스 1면을 장식하며 미국 사회를 들썩이게 한 충격적인 사건의 주인공들인 ‘그레이시’(줄리앤 무어 분)와 그보다 23살 어린 남편 ‘조’(찰스 멜튼 분)의 평온한 일상으로부터 시작된다. 여느 부부와 같아 보이지만 사실 이들에겐 감추고자 하는 어두운 과거가 존재한다.

그레이시와 조는 그가 청소년이던 13살 때 만나 교제를 시작했고, 그녀는 이로 인해 청소년 성범죄로 수감된 기간에 첫 아이를 감옥에서 낳았다. 그레이시가 형을 마친 뒤 이들은 합법적으로 결혼했고, 현재는 (나름) 평범한 결혼생활을 유지하려고 하는 중이다. 시간이 흘러 이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는 영화가 기획되고, 영화에서 그레이시를 연기하게 된 배우 ‘엘리자베스’(내털리 포트먼 분)가 캐릭터 연구를 위해 그들의 집을 방문한다.

엘리자베스는 부부 주변에 머물며 이들의 일상과 과거의 진실을 파헤치고자 한다. ‘진실’에 접근할수록,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동시에 그레이시와 조 역시 이들 관계의 시작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처음으로 마주한다.

영화를 연출한 헤인스는 데뷔작인 ‘포이즌’(1991)과 이후 작품인 ‘벨벳 골드마인’(1998) 같은 작품으로 뉴 퀴어 시네마의 선두에 섰다. ‘캐롤’을 포함한 그의 작품들은 현재까지도 성 정체성을 넘어 인간의 정체성, 그리고 그것을 규정하는 제도와 규율을 첨예하고도 감각적으로 비판하거나 전복하는 재현에 중점을 둔다.

다음주 개봉하는 헤인스의 신작 ‘메이 디셈버’ 역시 그의 커리어적 전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차이점이 있다면 이번 작품은 범죄와 로맨스라는 양면의 외피를 가진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는 것이다. 헤인스는 분명 창작자로서 실제 사건의 논란성을 간과하지 않았을 것이다.

심오한 사건을 재현하는 영화에서 배우의 역량만큼 절실한 요소는 없을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무어와 포트먼은 영화의 무게를 감당하고도 남을 정도의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특히 영화에서 중요한 장치로 등장하는 거울을 마주하고 서로를 바라보는 메이크업 시퀀스는 세기에 남을 예술적 자취이자 영화적 기록이다. 이 모든 자취와 기록을 극장의 큰 스크린으로 목도하는 일은 어쩌면 선택이 아니라 의무일지도.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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